건강 & 운동

나의 변비 투병기 7 - 바이오 피드백 훈련

vainmus 2019. 5.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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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중학생 때 처럼...

나는 다시 변비에 걸렸다. 

벗어날 방법을 찾으며 이 책 저 책을 훑어본다. 

그러던 중 머리를 깎으러 동네 미용실에 들렀다 여성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평생을 고생한 한 변비 환자의 경험담과 내가 전혀 모르던 변비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이름하여 바로 '바이오 피드백 훈련'.

 

 

바이오 피드백 훈련이란?

 

바이오 피드백 훈련.

우리말로는 생체 되먹임 훈련.

'뭔가 피드백이 없어~' 흔히 이런 말 종종 하곤 한다.

여기서 피드백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뭔가 피드백이 없어' = '뭔가 반응에 대한 자극이 없어'

 

똥을 쌀 때는 변기에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게 된다. 

그래야 항문을 막고 있는 근육이 풀리며 똥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힘을 못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배에 힘을 줘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배변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레 체득되는 배변훈련(똥 싸기 위해 배에 힘주는)이기에.

애기가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모국어를 체득하는 것처럼.

 

똥을 참는 것이 습관이 되거나 충분히 어린 시절 충분한 배변훈련을 하지 않으면 배에 힘주는 법을 체득하지 못한다. 

배에 힘이라고 해도 윗몸일으키기 같은 동작과는 다르다. 윗몸일으키기는 외부에 보이는 복근을 사용하고 동작 자체를 이해하기 쉬워서 누구나 힘만 좀 기르면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똥 싸기 위해 힘을 주는 건 보이지 않는 근육이다. 어떻게 힘을 줘야 한다는 명확한 설명을 하기도 좀 애매하다. 

 

가슴 운동을 위한 팔굽혀펴기는 눈에 보이는 앞쪽 근육 대흉근을 사용한다. 그냥 밀면 된다.

등 운동 턱걸이는  팔굽혀펴기보다 훨씬 어렵다. 자기 체중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도 이유지만, 팔이 아닌 등 근육을 사용해 당겨야 하는 게 초보자들한테는 난감하게 다가온다.  익숙한 팔이 아닌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 쓰지도 않는 등을 사용한다는 게 좀처럼 이해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뒤쪽 근육 자체가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보면 속에 있어 정말 눈에 안 보이고 감을 잡기도 어려운 똥 싸는 근육을 인위적으로 느껴서 힘을 준다는 게 생각보다 만만한 일은 아니다. 

 

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배변훈련을 통해, 아니면 매일 똥을 싸므로, 그냥 자연스레 체화된다. 

<나의 변비 투병기 1>에서 썼듯이 아주 어린 나이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섭고 싫어서 똥을 참았다고 했다. 

결국 충분한 배변 연습을 하지 못해서 배에 힘주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이다. 

똥을 밀어낼 수 없으니 운동, 유산균, 식이섬유, 단식... 이런 방법들은 항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2019/04/16 - [분류 전체보기] - 나의 변비 투병기 1

 

나의 변비 투병기 1

나는 똥을 쌌다. 바지에... 엄마한테 혼났다. "너 똥 한달에 몇번싸?" "... 3번..." "아니 똥을 매일 싸야지 어떻게 한달에 3번이야!" 초등학교(나 때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땅꼬마 때의 일이다. 심각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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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0대 여자의 변비 경험담으로 시작했다. 

자세한 내요은 지금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50 평생 변비에 시달렸다는, 그래서 변비에 좋다는 건 전부 다 해봤다고 쓰여있던 건 기억한다.

유산균, 식물성 섬유, 단식, 운동... 나중엔 마라톤까지 했다고...

 

읽으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이해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다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게 바이오 피드백 훈련이다. 

약 1 달인가? 아무튼 훈련을 마치고 집에서 아주 시원하게 변을 봤는데 향긋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만큼 기뻤을 것이다. 몸의 묵은똥, 마음의 묶은 때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 더없는 상쾌함을 맛보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바이오 피드백 치료는 서울 잠실, 송파 그 그쪽에 있는 서울 아산 현대 병원에서 했다고 해서 나도 그 병원으로 선택을 했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 지하철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뱃속엔 똥으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변비 때문에 왔어요. 바이오 피드백하고 싶어요"

 

대기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린 후 담당 의사를 만난 내가 한 말이다. 이렇게 하면 바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각종 검사를 하고 최종적으로 변을 밀어내는 힘이 모자라면 하게 된다고. 그러니 일단 검사 예약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오라 했다. 

 

'이거 꽤나 복잡하구나...'

 

이런저런 종류의 검사를 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본다.

 

 

 1  대장내시경

 

많이들 해보셨으리라. 근데 나는 그때 대장내시경을 처음 해봤다. 하제라고 하는 설사약 먹고 폭풍 설사를 한다. 정말 내 뱃속에 그렇게 많은 똥이 있는지 몰랐다. 싸도 싸도 계속 나왔다. 

'내가 이렇게 많은 똥을 달고 살았단 말인가?'

그렇게 장을 비우고 병원에 가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엉덩이만 뻥 뚫린 바지를 입고 내 항문을 간호사들에게 맡겼다. 

비수면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상당히 괴로웠다. 

아주 가늘지만 힘이 엄청 좋은 장어가 똥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대장을 쑤셔대는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게 끙끙 대는 소리를 했다. 

간호사는 말했다. 

"괜찮아요~ 참으세요~"

난 안 괜찮은데... 아픈데...

 

갑자기 웃긴 얘기가 떠오른다.

전에 알던 누나가 들려준 얘기.

모 대학 병원 출신 간호사였는데 대장항문외과에서 일했었다고 했다.

난 간호사가 내시경을 했지만 그 누나 말에 따르면 간호사가 보조하고 의사가 직접 하는 거라 하던데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떤 젊은 여자가 대장내시경을 하러 왔고 남자 의사가 내시경을 그 여자의 항문으로 밀어 넣었다. 잘 참나 싶었는데 한참 후에 그 여자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비명에 가까운 한 마디가 흘러나오더란다.

"어흑~ 오빠~ 그만!"

 

 

진짜로 나도 외치고 싶었다. 

"어흑~누나~ 그만!"

(간호사 분이 아주머니 뻘 되셨다, 뭔가 오랜 경륜이 보여 그래도 믿음이 갔다)

 

도대체 누가 수면내시경을 위해 마취를 하면 안 좋다고 했단 말인가? 다음번엔 꼭 수면으로 하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참아냈다. 

장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 고통을 뒤로하고 어쨌든 검사를 마쳤다. 

이상 없음.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  물풍선 삽입?

 

정확한 검사 이름은 모르겠다. 무슨 삽입 검사? 

쉽게 설명해 똥구멍에 물풍선을 집어넣는 거다.. 

모양 빠지게 침대에 엉덩이를 까발린 채로 엎드린다. 

간호사(또 여자다!)가 들어오더니 이런저런 체크를 하고 조그마한 물풍선을 항문에 집어넣는다.

갑자기 들어온 이물질이 마치 처음부터 내 몸에 있는 똥 같았다. 갑자기 똥 마려운 느낌이 났다. 

나보고 힘을 줘보라 한다. 

물풍선을 빼내야 하니까.

뭔가 안 빠지면 큰일이다 싶은 마음이었다.

집중해서 힘을 줘 밖으로 빼냈다. 

풍선이 나왔다. 

'참 잘했어요'를 바라는 초등학생의 마음이었다. 

간호사가 내 엉덩이를 휴지로 닦아줬다.

혹시 진짜 똥이 나온 건 아닌가 순간 긴장했지만 아니었다.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 

"미는 힘이 부족해요"

 

 3  조영제 삽입 검사?

 

 

간호사는 내 항문을 통해 조영제(인공 똥)를 주입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똥을 싸야 했다.

 

앞서 말한 물풍선 삽입? 검사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항문을 통해 직장 속에 조영제를 삽입한다. 그리고 진단 장비로 환자가 배변 활동하는 것을 체크해서 결과를 도출한다. 

 

조영제...

몸을 투시할 수 있는 기계로 똥 싸는 모습을 단층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똥이다. 

색깔이 하얗고 냄새가 없고 또 무슨 하얀 가루 반죽 같은 건데 질감이 진짜 똥 하고 똑같았다. 이걸 간호사(이번엔 남자)가 내 똥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갑자기 며칠 동안 화장실을 못 간 거 같이 아랫배가 묵직해져 왔다. 근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남자 간호사가 나를 어두운 방에 남겨두고 촬영장비가 있는 밖으로 나갔다. 다른 간호사들과 같이 나를 지켜보며 말했다. 

"힘줘 보세요"

남녀 혼성 3명의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어두운 검사실 방에서 홀로 똥을 싸야 했다. 진짜 똥이 아닌 조영제로 만든 인공 똥이지만...

 

근데 좀 쪽팔린 건 둘째 쳐도 정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똥이 (아니 조영제, 그 이상한 화학물질) 나오질 않았다(물론 인체엔 무해하다고 했다). 그럴수록 간호사들은 기계를 통해 내가 똥 싸는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그렇게 해서 결론이 났다. 

근.. 실조... 무력증?...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그냥 변을 볼 수 있게 하는 근육에 힘을 못 주는 증상이다.

 

 

 4  바이오 피드백 훈련

 

드디어 오랜 시간이 걸려 그토록 내가 원하던 바이오 피드백 훈련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온갖 쪽팔림으로 점철된 난관들은 오직 이 바이오 피드백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간호사(또 여자다!) 선생님은 저 멀리 인천에서 찾아온 변비 환자를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다.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화장실에 가서 긴 전선이 연결된 센서를 내 똥꼬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나와 그 전선을 간호사의 컴퓨터에 연결시키면 내가 실시간으로 힘을 주는 것이 모니터에 그래프처럼 표시된다. 똥 쌀 때 사용하는 근육에 제대로 힘을 주는 것인지 아닌지가 명확하게 객관화된 수치로 산출되는 것이다. 

 

처음엔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몰라서 막막했다. 하지만 이렇게도 줘보고 또 저렇게도 줘보고... 똥구멍 부근 근육들이 지랄발광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모니터에 어떤 신호가 왔다.

느낌을 잡은 거라고...!

이런 식으로 한 열흘에 걸쳐 10회 정도를 실시했다. 

귀에 꽂는 이어폰이다.

바이오 피드백 훈련 시 항문에 꽂았던 센서와 모양과 크기가 얼추 비슷하다. 

귓구멍과 똥구멍은 이렇게 통하는 데가 있는 것인가?

 

 

훈련 막바지엔 모니터를 보며 내 배변에 관련된 근육을 체크해주는 간호사 선생님과 수다도 떨며 여유도 부리곤 했다. 

"잠실나루 역 떡볶이 체인점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 

이런 말도 오간 걸로 기억난다. 

 

그렇게 훈련을 마쳤다. 이건 무슨 암 같은 질환이 아니기에 애초에 완치 판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자기가 느끼기에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마치면 되는 거다.

 

오래돼서 지금은 얼굴과 목소리도 생각이 안 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내 변비치료에 힘써주신 그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5  변비 식품 상담실?

 

바이오 피드백 훈련 마지막 날, 어떤 이유로 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병원 건물 내에 무슨 식품 영양 관련 상담실에 들렸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계셨는데 내가 변비로 고생한다는 걸 듣고 상담을 해주셨다.

결론은 라면, 흰쌀밥, 인스턴트 햄 같은 식품을 멀리하고 각종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하라는 말씀이었는데, 솔직히 그리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게 내가 똥 쌀 때 힘주는 근육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나중에서야 그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진부하고 상투적이고 누구나 아는 상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

아무튼 그때 그 식품 영양 관련된 일을 하시는 그분은 웃는 얼굴로 사람 기분 좋게 상담해 주셨다.

혹시 그 선생님도 변비를 앓으셨던 건 아닐까? 변비 환자인 나와 대화가 잘 통했으니...

상담해 주셨던 그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바이오 피드백 훈련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그만두기로 했다. 

어느 정도 똥 싸는 데 힘주는 그 느낌을 잡았으니까.

 

난 오랜 시간이 다녔던 학교를 졸업하여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는, 그런 느낌으로 그날 난 모든 훈련과 상담을 마치고 서울 현대 아산 병원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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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1 - [분류 전체보기] - 나의 변비 투병기 5 - 군대에서의 규칙적 생활

2019/05/15 - [분류 전체보기] - 나의 변비 투병기 6 - 그렇게 그가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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