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운동

나의 변비 투병기 4 - 변비와 논산 훈련소

vainmus 2019. 5.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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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들에게 부가되는 병역의 의무.

하지만 난 고질병이 있으니 결코 신체 건강하지 않았다. 

변.비.

병무청에다 대고 말하고 싶었다. 

 

"저... 군의관님...전 병이 있습니다."

"무슨 병인데?"

"변비입니다!"

"뭐?"

"그리고 변비로 인한 심신미약도 인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얻어 터졌으려나?

 

훈련소 입소하기 전에 마음이 참 안좋았다.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었다. 

 

'아~씨발! 도대체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야!'

'... 이 개 썅....나는 신의 아들(병역 면제자)가 될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난 이렇게 내 인생을 저당잡히는 거야... 아... 이 무시무시한 국가권력의 횡포에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나의 청춘... 빼았겨버린 인생의 봄...  젊음을 삼킨 ... 어쩌구 저쩌구....'

 

애국이다 신성한 의무다 하지만 솔직히 정말 가기 싫었다. 그런데 그건 위에 써놓은 불평불만 때문만은 아니었다. 변비에 대한 걱정도 크게 한몫 했다. 

 

'집에선 그나마 편안한 마음 가지고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변의를 느끼고 똥을 쌀 수 있지만 군대는 그렇질 못할 거 아닌가?'

'이거 어떻게 하나?'

 

 

 나의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훈련소 입소 이튿날 아침. 기상 나팔 소리가 울렸고 정신이 없었다. 전투복을 입어야 하는데 단추는 왜그리 안채워지는지. 또 뻣뻣한 전투화를 빨리 신어야 하느 것도 고역이었다. 

똥 쌀 시간은 커녕 아예 똥 마려움 자체가 소멸되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이리 저리 구르다 보니까 배는 또 빨리 꺼져서 하루 세끼는 꼬박꼬박 들어갔다.

허기는 져서 배식 내오는 대로 밥을 마구 퍼먹는데 똥은 못싸고...

 

그런데 이건 나만 그랬던 건 아니다. 상당수의 훈련소 동기들이 다 변비에 시달렸다. 난 그래도 오랜 변비 경험 때무에 그나마 참을만했지만 훈련소 측에 고통을 호소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담당하는 분대장이 말하길 군대에서 걸리는 변비에 특화된 처방이 있다고 알려줬다. 

카레와 유통기한 지난 우유의 조합!

2주일 동안 똥을 못 싼 녀석이 이렇게 먹고 시원하게 똥을 쌌다나 뭐라나...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러한 와중에 매일 아침 마다 똥을 싸는 녀석들도 있었다는 사실. 어디 지역 출신인지, 가정환경은 어떠한지, 고졸인지 명문대생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내성적인지 말 많은 외향적 성격인지 같은 건 똥싸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가 기억나는데 똥 잘 싸는 사람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다들 억지로 끌려와 반쯤 죽은 동태 눈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눈빛이 살아있었다. 변비로 인한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랬다. 



 변비... 변비... 변비...

빨리 똥 좀 싸고 싶은데 마음같질 않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당시 훈련소에서는 '전우조' 생활이란 걸 시켰다. 

전우조, 글자 그대로 전쟁 친구 조직.

탈영을 방지한다고 화장실 갈 땐 절대 혼자 못가게 하고 똥 오줌 마려운 사람 두세명씩 모아서 가게 했다.

오줌은 그렇다 쳐도 똥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눈치껏 똥 마려운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뭔가 애매했다. 

뭔가 배는 꽉 찬 거 같은 녀석들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지금 당장 나온다는 신호는 안오고...

또 그 녀석들이 똥이 마려울 땐 내가 안마렵고...

오락가락 하는 그 느낌을 변비 걸려보신 분들은 아시려나?

 

 

그래서 일종의 변비 계, 똥싸는 계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내가 비록 지금 똥이 안 마려워도 일단 같이 가 준다. 그럼 나중에 내가 똥 마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돈이 급한 사람에게 돈을 모아주고 나중에 내가 돈이 필요할 때 타 쓰는 그런 계 같은 조직을 똥 싸는 데 적용한 결과다.

다들 착하고 순수해서 내가 똥을 쌌다고 안 가주고 배신하는 행위는 없던 걸로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유발 하라리가 저술한 <사피엔스>의 주된 내용 중 하나가 이거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전지구를 지배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의사소통과 협동이다.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현생인류 생존과 번성의 가장 으뜸가는 비결이라는 것. 

우리는 그때 가장 정통성 있는 현생인류의 직계 후예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와가며 어떻게 해서 다들 똥을 싸긴 쌌다. 

적응되니 횟수도 늘었고.

1일 1똥은 거의 없었다. 똥 싸는 사람들의 변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하루가 아닌 1주일을 기준으로 잡으면 될 거다.

1주일에 2~3번, 뭐... 무난하구만...

1주일에 1번, 음... 그럴 수 있어...

1주일에 5번, 그뤠잇!

1주일에 7번, 엑설런트! 트루멘~더스!

1주일에 0.5번(중간에 똥이 끊기는 경우), 힘을 내세요!

이런 식으로.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래도 나 포함 훈련소 동기 녀석들 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똥 싸는 거에 적응해 갔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야간행군이란 이벤트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간행군은 훈련소 생활의 하이라이트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걷고 또 걸어야 하는데 이거 상당히 힘들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들 화장실 가서 똥을 싸려고 난리가 아니었다. 

다들 절박했다. 

이때는 전우조고 나발이고 없었다. 똥을 못싸고 군장지고 밤늦도록 훈련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하던 반드시 야간행군전에 똥을 싸야 한다, 는 심정이었다. 

난 운이 좋아 똥을 쌌다. 

화장실은 동기 녀석들로 가득찼다. 

똥을 쌀 사람, 똥을 싸는 사람, 똥을 싼 사람...

 

 

군장을 싸고 준비를 하며 내무반에 앉아있었다. 

똥을 못 싼 동기가 울상을 지었다. 

평소 좀 잘난체 하면서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어떤 녀석은 야간행군 출발 직전 아슬아슬하게 똥을 싸고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와~ 나 똥쌌다~우히히히"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들어오던 그 녀석은 두 팔로 날개짓을 했다. 

난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진짜 얼굴이 나오는구나'

똥을 싸서 가벼워진 자신의 몸을 하늘을 훨훨 나는 새에 빗대어 표현한 일종의 전위적 행위예술을 보는 듯 했다. 

정말이지 그 즐거워하던 해맑은 웃음은 전역한지 10년도 훨씬 넘었지만 내 기억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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