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운동

나의 변비 투병기 1

vainmus 2019. 4.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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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똥을 쌌다. 바지에...

엄마한테 혼났다. 

 

"너 똥 한 달에 몇 번 싸?"

"... 3번..."

"아니 똥을 매일 싸야지 어떻게 한 달에 3번이야!"

 

초등학교(나 때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땅꼬마 때의 일이다. 

 

심각한 중증 변비였다. 

저 어린놈은 왜 저렇게 똥배가 나왔냐?, 누군가 내게 하던 말인데 진짜 똥으로 가득 찬 '똥'배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세금을 사기당하는 바람에 나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근데 그 집은 공동화장실을 쓰는 다가구 주택이었다. 

그 당시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아마도 난 화장실 가기 무서워했나 보다. 집 밖으로 나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는, 좁고 어둡고 지저분한 공간, 들어가서는 불편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서 그랬을까?

화장실 가기 싫어서 똥을 참고... 결국 습관성 변비에 걸리게 된 거다. 

참 똥을 많이도 참았다. 

그리하여 나만의 특화된 배변 주기를 같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한 나만의 배변 주기.

아마도 당시 내 또래 중에 똥 안 싸고 오래 참기 대회가 열렸다면 분명 난 대상을 탔을 거다.

 

 

한 달에 3번!

요즘이라면 난리 날 일이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고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달랐다. 

우리 집 어른들은 먹고살기 힘들어 그런 세세한 것 까지 살펴볼 여유가 안되셨으리라.

게다가 당시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애들은 그냥 낳기만 하면 지가 알아서 큰다는 그런 인식이 있었다. 

그냥 자기네들끼리 동네에서 뛰어놀다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저녁 되면 알아서 들어가는,

어디가 깨지거나 상처 나도 그냥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하는 뭐 그런 분위기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난 계속 변비를 달고 살았다. 

하도 어렸을 때부터 변비가 있어 이게 크게 잘못된 건 줄도 몰랐다. 

그래도 가끔 뭔가 내가 다른 얘들과는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바로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나눠줄 때였다. 

요즘은 다들 위생상태가 좋아서 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채변봉투를 나눠주며 아침에 싼 똥 일부를 담아오라고 했다. 

기생충 검사를 하기 위해서.

나는 담아가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와 말하셨다.

 

 "누구야? 똥이 안 나온다는 사람?"

 

내가 손을 들었던가?

기억이 없다.

쪽팔려서 무의식적으로 삭제해버렸나?

자기 방어기제인가?

 

 

아무튼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다가 6학년 때 내가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친구들이 얘기하고 있던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야.. 미국에서 개발된 약 중에 똥 안 나오게 하는 약이 있대..."

"정말....?"

"으... 매일 아침마다 똥을 못 싼다고 생각해봐라... 으..."

 

별로 친하지 않던 녀석들의 얘기가 갑자기 내 귀에 꽂혔다.

 

'매일 아침 똥을 못 싸는 거... 바로 나잖아!'

 

희한하게도 이 얘기를 듣기 전에는 멀쩡했지만 듣고 난 후부터 내 배에서 불편한 신호를 보내곤 했다. 

똥을 싸지 못해 뱃속에 며칠 전에 먹었던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 차 있는 그런 더러운 느낌이 비로소 실감 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얘기를 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뭔가 전부터 조금씩 알고 있었다가 비로소 촉발된 것이리라. 이것이 트리거 포인트인가? 사건을 촉발시키는 그 무엇?)

6학년이니 이때부터 중학교 대비 영어나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머리가 크고 생각도 많아지고 하는 시기이니까. 

그래서 그전까지는 나도 그냥 멍하니 지내며 아무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가 이 즈음부터 뭔가를 혼자서 해보려 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생각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고 자아가 정립되는 시기라고나 할까?

이제 사춘기로 넘어가는 문턱 앞에 서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약간의 절박감이 생긴 듯하다. 

 

'어떻게 하든 똥을 싸야 한다'

'반드시 똥을 싸야 한다'

'근데 똥이 안 마렵다'

'똥이 나오지도 않느다'

'아랫배만 볼록하게 나와있는 게 진짜 보기 싫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한 것이 정말 괴롭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하여 나의 길고 긴 변비 투병기는 시작되었다. 

(난 변비는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해서 투병기란 단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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