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운동

나의 변비 투병기 5 - 군대에서의 규칙적 생활

vainmus 2019. 5.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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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비 투병기 4 - 변비와 논산 훈련소

◆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들에게 부가되는 병역의 의무. 하지만 난 고질병이 있으니 결코 신체 건강하지 않았다. 변.비. 병무청에다 대고 말하고 싶었다. "저... 군의관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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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엇보다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동네 미용실 여성잡지 건강관련 코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글귀다. 

 

'변비를 고치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누구나 다 알지만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규칙적 생활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훈련소 마치고 자대를 배치 받아서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2년여간 내가 복무하게 될 부대에 처음 도착해서는 여전히 훈련소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리저리 바쁘고 정신없고... 항상 누가 부를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하고, 또 뭘 해도 잽싸게 움직여야 해서 근육의 긴장감도 놓치지 않고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하면 도대체 똥을 언제 쌀 수 있을까?

 

 2  요즘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는 부대에 갓 들어온 이등병들을 약 1주일 동안 아버지 군번의 상병이 아침부터 밤까지 대리고 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버리 이등병이니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그래도 좀 혼자 있고 마음편하게 지내고 여유가 있어야 똥이 나오는데 도무지 그러하질 못했다. 그러니 괴로울 수 밖에...

 

(군대에서 군번은 들어온 연도와 월(月)에 따라서 정해진다. 군대에서 병들 상호간에 1년 차이는 엄청나다. 그것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게 아버지-아들 군번. 즉 나의 입대일 보다 정확히 1년 먼저 들어온 선임 군번이란 뜻.)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아침 6시 전에 눈이 떠졌다. 잽싸게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투화 신고 모포(이불), 매트리스 접어서 놓고(직각으로 각도 잡아야 한다) 인원체크 하고(점호라고 부른다)...

제일 싫었던 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는 구보(달리기)였다. 

 

똥은 못 싸서 배는 꽉 차있지, 딱딱한 전투화는 신었지... 거기다 구보를 마치자 마자 바로 식당으로 직행에 땀흘린 채로 아침밥을 먹어야 했으니...

속이 부대낀 것을 뛰어 넘어 똥이 꽉 차있는 쓰레기 통이 내 배에 쳐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떼어 놓을 수 있으면 아예 똥이 들어찬 내 대장을 박으로 던쳐버리고 싶었다.  

 

 

그때 나온 아침밥 중에 시효(유통기한인데 군대에선 시효라고 함)이 거의 임박한 전투식량을 처분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나줘줘서 먹으라고 했다. 나를 제외한 고참들은 다들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 중에 나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왜소한 선임병이 있었는데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인상 깊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비록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사람이 조금 멋있게 보였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힘든 군대 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했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토록 맛있게 전투 식량을 먹고 있다니...'

 

20대 초반의 애띤 얼굴(나보다 어렸음)에서 싫은 내색은 전혀 없었다.

 

'참 내면이 강인한 사람이구나...'

'나도 눈에 보이는 육체가 아닌 정신을 키워야 겠다.'

 

뭐 이런생각이 그 짧은 순간 흘러갔다. 

 

(그리고 그 선임은 아침마다 똥도 잘 쌌다. 매일 아침 휴지를 챙겨 화장실로 가던 그 뒷모습을 자주 봤다)

 

하지만 평온한 얼굴의 그 선임과는 다르게 나의 조식(군대에선 아침, 점심, 저녁이 아닌 조식, 중식, 석식이라고 함)시간은 괴롭고도 괴로웠다. 

똥으로 가득 차오르는 배, 아직도 헐떡거리는 숨, 전투복을 적신 땀냄새, 진짜 맛없는 전투식량(사회에서라면 배고파도 안먹고 버렸을 맛이다)... 거기다 같은 공간에 고참들(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생활하던 군대에서는 선임은 절대 권력자였다)하고 같이 있었으니...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완전 지옥이구나....'

 

 

 3  일주일 같은 하루가 계속되었다. 그런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던 중 고참이 나에게 물었다.

 

"야... 신병... 너 똥 안싸냐?"

 

난 사실대로 말했다. 

 

"이병! 박보검(홍길동이나 아무개 대신 씀)!  ... 변비 입니다!.."

 

고참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릴 뿐, 별 말이 없었다. 

 

자대에서 처음으로 똥을 싼 날이 기억난다. 

식사를 마친 후 다들 여유로웠던 저녁시간이었다. 

배에서 신호가 왔다. 

하지만 신병이기에 절대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내 아버지 군번인 상병을 불렀다. 

 

"화장실에 가고 싶습니다"

 

"큰 거?"

 

그 상병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기대하는 듯 했다. 

내심 똥 못 싸는 날 걱정했던 것 같다. 

내가 묶은 똥을 싸는 동안 그 상병은 내내 화장실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난 좀 미안한 마음에 되도록 빨리 싸고 나가려고 했다. 

수세식이지만 좌변기가 아닌 쭈구리고 앉는 그런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난 물을 내렸다. 

 

그런데...

 

 

똥이 안내려갔다. 

얼마나 내 장속에서 숙성되었는지 똥의 경도, 밀도, 그리고 점도가 장난 아니었다. 

내 마음 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간 듯 한 시커면 굵은 똥 덩어리가 변기의 새하얀 세라믹 표면을 붙잡고 꼼짝을 안했다. 

두번 세번 계속 물을 내렸다. 

똥이 내뱃는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고, 어떻게 나온 세상인데 이대로 저 깊고 어두운 정화조로 빨려 들어가기 싫다고...'

 

칸막이 문 바로 앞쪽에 내 고참이 기다리고 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슬리퍼로 내 똥을 변기 구멍에 밀어 넣었다.

 

똥이 내게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내 몸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나온, 그렇지만 자신만의 자의식을 가진 생명체 같았다. 

 

'안돼... 살려줘 ... 난 정화조로 가기 싫어... 저 변기 구멍으로 빨려들긴 싫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씨발 ... 꺼져.... 이 똥덩어리 새끼 같은게....(진짜 똥인데)'

 

 

 4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거짓말 처럼 변비가 낳았다. 

매일 아침 구보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약 30분 정도의 정리 및 여유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때 절묘하게 똥이 마려웠던 거다. 

강제로 끌려들어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뒤범벅인 군대생활이었지만 이렇게 매일 아침 똥을 쌀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큰 위안거리였다. 

고등학교때 헬스클럽 다닌 이후로 맛보는 아침 똥의 쾌감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백번 천번 맞는 소리이지만 너무 상투적이고 뻔해서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체험하는 건 그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몸으로 고생하고 깨지면서 배우는 것이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나한테는 그게 바로 군대였던 것 같다. 

 

 

솔직히 난 아직도 내 군복무 경험에 대해 그닥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자유로움과는 상극이고 많이 갈굼도 당하고 스트레스도 많았고... 물론 나도 어리버리해서 고참들 속 좀 태우긴 했지만...)

하지만 규칙적 생활의 중요성을 체득한 것 하나만은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겨울에는 6시 반에 기상했음) 구보(달리기)를 하고 아침, 점심, 저녁을 빼놓지 않고 먹는다. 거기다 절대 게으름을 피울 새 없이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정말 건강에 큰 도음이 된다. 

 

바꿔 말하면 난 그때까지 이런식으로 살지 않았다는 거다. 불규칙하고 게으르고 한꺼번에 많이 먹거나 아예 밥을 귀찮아서 안 먹거나 밤 늦에 야식을 먹거나(물론 군대도 몰래 컵라면 같은 야식을 먹지만 이등병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글을 쓰다보니 최근에 읽었던 김민식PD의 책에 나오는 다니엘 헤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정도를 달린다고 한다.

모든 것을 똥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변비 집착 블로거 답게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

'다니엘 헤니... 그는 분명 변비가 없다. 아침에 똥을 못 싸서 배가 무거우면 절대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씨벌... 누구는 요모양 요꼴인데 누구는 잘생기고 키도 크고 똥도 잘싸...'

내가 군대에서 억지로 마지못해서 했던 아침 구보를 그는 매일 자발적으로 해왔던 것이다.

타고난 잘생긴 외모에 건장한 체격만이 그의 본 모습은 아닐 것이다.

꾸준한 자기관리가 있기에 이렇게 성공했을 거다.

나도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그건 그렇고 사진 속 다니엘 헤니의 빨간 셔츠도 좋지만 검은색 벨트를 한번 보시라.

날렵한 저 허리 라인!

다년간의 변비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똥을 잘 못 싸면 저 부분이 저토록 가늘 수가 없고 옷 핏이 저리 좋을 리가 없다.  

아랫배만 볼록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는 분명 장건강도 좋을 것이다.

난 확신한다!

 

아무튼 난 전역 해서도 이렇게 규칙적 생활을 해서 다시는 변비에 걸리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하루빨리 내 남은 군생활이 끝나기를 기대하며... 

 

'국방부 시계야...'

'어서어서 가거라...'

'나를 다시 자유롭게 해다오....'

'나의 빼앗긴 자유를 다시 찾아다오...'

 

제대하면 매일 아침마다 똥을 쌀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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