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읽고 (2)

vainmus 2019. 6.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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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계속…

 

2019/06/28 - [책 리뷰] - <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읽고

 

<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읽고 (2)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화두를 붙잡는 것이다.

 

화두를 붙잡는다는 게 사실 별게 아니다. 이런 책을 읽은 후에 - 앞에서 말했듯이 편하게 넘어간 후에 - 그 이해되지 않았던 주된 내용 부분을 기억해 뒀다가 틈날 때마다 한번씩 다시 생각하는 것뿐이다. 매일 할 필요도 없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충분하며, 그저 놓지만 않으면 된다. 단지 중요한 것은 기계적으로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궁금증의 감정을 계속 유지하는 부분인데, 이것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이러다 보면 아무리 어렵고 복잡미묘한 과학, 사회, 논리, 윤리적 개념이라 한들 몇 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공부를 특별히 한 것도 아닌데 이미 내 속에서 상당히 발전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즈음이 되면 이제 문제의 책을 다시 한번 읽기에 적합한 때가 되고, 그렇게 다시 읽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들이 절실히 와 닿으면서 무릎을 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 파토님이 쓰신 ‘죽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30가지’ 중 ‘책 읽기’ 편에서 발췌 -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렇게 잊혀졌던 최면술. 하지만 호기심이 있는 성격 때문인지 간헐적인 흥미는 꾸준히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앞에 있는 글처럼 자기 최면, 암시, 믿음 …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도 늘어나고 개념이 좀 더 명확해졌다.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스러운…

뭔가 의식적, 인위적, 정신적 작용을 떠올리는 믿음이란 단어를 내 방식대로 다시 정의해 보겠다.

 

믿음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자연스러운 상태다!

 

예를 들어 보자.

 

 

  •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 어렸을 때부터 타서 그런지 자전거가 익숙하다
  • 나는 젓가락질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 그냥 자연스럽게 젓가락 쥐고 밥 먹는데…

  • 사회생활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대화를 잘 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최면을 한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할 수 있다’

  •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어쩜 그리 말을 잘 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냥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취한 것뿐인데...

  • ‘나는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라고 자기 최면을 한다. 시험 잘 본다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 진짜 고생해서 교과서를 다 외웠다. 뭐 이번 시험 당연히 100점인데 뭔 믿음을 가지고 말고 해?

  • ‘나는 농구를 잘한다’라고 자기 최면을 한다.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 농구 많이 해봐서 상대방 공 다루는 것만 봐도 감이 와. 이번에도 내가 이기겠네.

믿음은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익숙한 자연스러움은 그냥 몸에 체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몸에 익은 거다.

로봇으로 구현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누구나 아무런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체화, 체득은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 얻은 거다. 걷기, 말하기 등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들을 위해 - 비록 기억은 못하지만 -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던가.

(그래서 뭘 하나 제대로 익히기가 어려운가 보다. 외국어든, 악기든, 운동이든…)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기 위하여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에 이르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 쉬운 이해를 위해 저마다의 여러 가지 이루고픈 성취를 그냥 부자로 설정하고 계속한다.

 

첫 번째, 의식과 자아가 확고해지기 이전부터 그 상황에 머무는 것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어른이 되어 같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폭력 유전자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성향이 몸에 밴 거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의식적으로 그런 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다. 하지만 자기 최면에선 이러한 ‘의식’ 때문에 원하는 암시의 말을 제대로 무의식(잠재의식)에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좋은 쪽으로 보면 이런 경우도 있다.

엄마, 아빠가 사교성이 좋고 유머러스하면 자식도 활달한 성격에 애들과 잘 어울린다.

실제로 내가 봐 온 친구들은 이런 것 같다.

 

만약 - 훌륭한 인성과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전제하에 - 상류층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떨까?

흔히 알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전형적 특징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1.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졌고,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2. 진취적이고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못난 사람들이 억지로 보여주는 허세, 객기와는 완전히 다른다).

  3. 시간을 결코 헛되게 쓰는 법도 없다(온종일 늘어져 TV를 보느라 하루가 다 가고, 밤 늦도록 게임을 하느라 늦잠을 늘어지게 자는 일도 없을 거다).

  4.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몸에 안좋은 가공 식품은 되도록 피한다.

  5. 세상 돌아가는 일과 돈의 흐름에 민감하다.

  6. 독서, 자기계발도 열심히다.

  7. 깔끔한 헤어스타일, 상황에 알맞은 옷차림, 대화를 이끄는 세련된 매너 등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체득, 체화를 한다. 나중에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었을 때, 이들이 바로 엄친아나 엄친딸로 불리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부잣집 애들이 단순히 ‘돈이 많아 공부를 잘한다’, 또는 ‘성적을 돈으로 처발랐다’라는 얘기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레 익힌 삶을 사는 자세, 그리고 그들만의 생활양식과 인맥 등을 가난에 찌들어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자식이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위적으로 내보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말이다.

 

엄친아, 엄친딸과 돈 없는 백수를 부자들이 모이는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만찬에 데려놓는다 치다.

과연 누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일까?

백수가 전날 아무리 ‘나는 당당하다’라는 자기 최면을 한다 해도 그게 가능할까? 아마 쭈뼛쭈뼛 위축된 모습으로 구석탱이 한 곳에 찌그러져 있을 거다.

 

물론 이게 나쁘고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과연 누가 더 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까?

푼돈에 얽매여 좁은 시야를 가진채 바로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큰 비전을 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리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움켜쥘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둘 중 어느 부류일까?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어른들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근본도 없는 놈이 어딜 감히...’

‘그 사람의 집안을 봐야 한다’

 

거부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두 번째, 현실적 노력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다.

 

계속 애쓰는 거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며 부지런을 떨어서 시간을 벌고, 경제 관련 책이나 신문으로 지식을 얻고, 도움되는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만들고…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서서히 부자의 삶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몇 년간 계속된다면 꽤 많이 변한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익숙한 원래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게 보통 인내로 될 일인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본래 나 자신을 지우는 게 어려울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낯선 것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되도록 하는 게 어려울까?

 

세 번째, 최면술 또는 심상화?

 

앞서 1편에서 처음이지만 최면술로 나름의 효과를 봤다고 했다. 하지만 대단한 성취를 해내거나 한건 아니다.  현실적 노력을 등한시하고 최면만을 했기 때문일까? 물론 현실적 노력이 중요하지만 다르게 한번 생각해보자.

 

여기서부턴 그냥 내 가설이다.

다시 예를 들어 본다

 

‘재테크를 잘하고 싶어 처음 최면을 해봤다. 근데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역시… 최면을 해도 소용이 없는 건가?’

 ‘처음 재테크 관련 서적을 한 권 읽었다. 예전보다 보는 눈이 조금 넓어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역시…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는 건가?’

 

 

위의 두 가지 경우는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 : 현실적 노력을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통점 : 오랜 시간 꾸준히, 진중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

 

이걸 유념하고 다음을 보자.

 

자기 최면을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

단, 복권 당첨처럼 요행을 바라고 땀 흘리는 걸 싫어하는 나태함이 아닌, 시합을 앞둔 국가대표 선수의 자세로, 또는 오랜 시간 성실함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거장처럼, 그렇게 최면을 연습한다면...

 

몸과 정신을 이완시키기 위해 누울 때, 대부분이 이내 잡념과 졸음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최면을 제대로 연습하고 또 잘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어떨까(만약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오랜 정신 수련을 한 수도승 분위기를 풍길지도 모르겠다)?

깊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한 채 원하던 암시의 말을 통해 바라던 것을 보다 수월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한 도구라고 보면 ‘시크릿’ 이란 책에서 말하는 심상화도 최면술과 비슷하다고 본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담은 책 시크릿.

한때 인기였으나 지금은 사이비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어쩌면 상상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성취의 방법이 아닌 노력의 강도가 진짜 중요한 것일지도.

 

‘상상만으로 원하는 걸 끌어당긴다’라고 하지만 여기엔 꼭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상상을 하는 내가 1인칭으로 그 상황 속에 빠져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

떠오르는 온갖 잡념과 망상을 이겨내고,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진짜 현실처럼 인식될 정도로 해야 한다.

 

유명인사들이 모인 화려한 만찬에 초대받은 나를 상상해본다.

철저히 1인칭으로.

 

잡념이 든다. 하지만 계속 시도한다.

원하는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입고 있는 고급 정장이 피부에 닿는 느낌, 나와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 만찬장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의 선율…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몇 달을 계속하다 보니 마치 상상 속 만찬이 현실 같기도 하다.

아니,  상상속 만찬이  현실의 삶에서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계속 쭉~ 남아있다.

 

만약 기회가 되어 앞으로 그런 곳에 가게 되더라도 편안할  것 같다.

굳이 억지로 편안하다고 굳게 믿으려 애쓰지 않아도...

오랜 시간을 지내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우리집처럼...

 

 

잡히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또 계속되는 자기 최면과 심상화의 실패를 극복하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결론

나름 진지한 고민 끝에 결론 내렸다.

 

자전거를 못 타서 익숙해지려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넘어지면서도 자전거를 타는 수고를 하는 것, 그리고 가만히 방에 누워 정신을 모으고 자전거 잘 타는 내 모습을 1인칭으로, 그것도 아주 세세하고 생생하게 느낄 정도로 상상하는 것.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실제 자전거 타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결국 최면이나 심상화 보다 차라리 그냥 현실에서 노력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그래도 현실적인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혹은 현실적 노력을 보조해주는 한 방편으로서 유효하지 않나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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