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읽고

<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읽고

 

'놀면서도 1등을'

도발적인 글귀로 눈길을 사로잡는 책과 마주쳤다. 내가 막 중학교에 입학한 1994년 학기초였다. 책의 이름은 바로 ‘기적의 최면 학습법’

 

잘난 녀석이 되고 싶었지만 노력 하기는 귀찮아 했던 나와 딱 맞는 책. 이게 진짜 찰떡궁합이지.

당장 내용을 알고 싶어 거금 오천원을 주고 책을 샀다.

 

 

얇고 쉽게 최면술의 원리를 풀어낸 책.

총 3권으로 되어 있는데 핵심내용은 1권에 다 나와 있다.

1권만 봐도 충분하다.

요약한 핵심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잠재의식)에서 나와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기 암시를 하면 된다. 그리고 반복해야 한다. 언제까지? 조금의 의심도 없어질 때까지. 의심을 하는 의식이 암시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릴 때까지.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잠재의식)까지 그 내용이 온전히 전해질 때까지. 그런데 의심 많은 의식을 뚫고 잠재의식에 다다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 대비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최면이다. 재촉할 최, 잠잘 면. 잠을 재촉한다? 그렇다. 자기최면으로 의식을 잠재운다. 의식이 잠들면 의심도 없어진다. 암시의 말을 가로막는 의심쟁이 훼방꾼이 없어진다는 소리다. 잠재의식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결국 자기최면을 통해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그 밖에 앞서 정리한 핵심에는 들지 못했지만 생각해 볼 만한 글귀들이 있었다.

 

'좁쌀만 한 믿음만 있어도 태산을 옮길 수 있다'라는 예수님 말씀, 어쩌면 단순한 수사적 표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말이 씨가 된다'던 옛 어르신들의 말씀 역시 암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 난 왜 되는 게 없냐! 내가 그렇지 뭐!"  이렇게 습관적으로 내뱉는 부정적인 말들이 조금씩 의식 너머에 있는 잠재의식에 스며들어 운명을 안 좋은 쪽으로 바꾼다.

아직 의식이 미약한 어린이에게 폭언을 하면 아이의 잠재의식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예전 미국 교도소 수감자 중 어린시절에 "너 그러다 커서 감옥 간다"라는 말을 들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쉽고 얇은 책이었다. 하지만 독해력이 좋지 못한 중학생이였기에 며칠에 걸쳐 힘겹게 완독해야 했다. 그렇게 다 읽고 나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처음 해본 자기최면

내 관심사는 크게 3가지였다.

 

1. 학업 성적 : 그냥 머리 깎고 교복 입은 중학생이 되었으니 그냥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2. 농구 : 당시 크게 농구 붐이 일었다. 다들 농구화를 신고 농구를 해댔다.  시대적 흐름에 순응해야만 했다.

3. 싸움 : 남자 중학교에선 싸움실력이 곧 권력이다.

 

난 생각했다.

'자기 최면으로 공부, 농구, 싸움 짱 먹어야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무의식.   타인은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어쩌면 자기 자신도 직시할 수 없는, 한 개인의 비밀스럽고도 은폐된 마음의 심연.   삶에서 모든 시련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기적적 힘의 원천인 동시에, 빛나는 성공의 정점에서 끝없는 불운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종국에는 파멸로 인도하기도 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습관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일생과 함께하는, 육신과 정신에 강력히 각인된 행동양식 또는 사고방식.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바뀌는 과도기적 시기, 질풍노도의 사춘기, 중학교 1학년!   미처 중2병을 맞이하기도 전에 찾아온 낯선 정신세계와의 조우.   드넓은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는 동년배 친구들을 뒤로한 채, 소년은 결심했다.   세상 '밖'이 아닌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이 세상만큼 넓을지도 모를, 아니 어쩌면 더 크고 흥미진진할지도 모를 그곳으로…   그랬다... 소년은 자신의 내면 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잠재의식이란 거인을 흔들어 깨우려 하고 있었다.

오글거린다. 하지만 그때는 나름 심각했고, 난 책에 나와있는 대로 따라 했다.

'놀면서도 1등을!' 글귀가 시선을 확 사로잡으며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방에 드러눕는다. 팔, 다리의 긴장을 푼다. 몸과 마음을 이완시킴으로써 의식이란 의심꾼을 잠재운다. 그리하여 깊은 곳에 있는 내 잠재의식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점점 몸과 마음이 이완되며 편안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열 하나, 열 둘, 열 셋,...'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채 스물을 세기도 전에 정신은 딴 데로 팔려버리고 이내 난 최면이 아닌 낮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깨고 나니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하루가 그냥 가버렸다.

 

저녁을 먹고 밤에 다시 할까 하다가 그냥 잤다. 비록 가만히 누워있었지만 정신을 집중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쉬어줘야 한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며...

 

다음에도 잘 되질 않았다. 하면 할수록 잡념에 끌려다니다 잠들기 일쑤였다.

땀 흘리며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 마음만 고요히 유지시키면 되는 건데도 계속 실패했다.

 

'왜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최면술 연습을 포기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헛짓거리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얻은 깨달음이 두 가지 있다.

성적을 올리려면 공부를, 농구와 싸움을 잘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

그리고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작은 성공 1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3년 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자기 최면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럴만한 필요성이 있어서였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규율이 좀 엄했다.

입학식 첫날부터 밤 9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다. 아직 날씨는 추운데 (교무실은 펑펑 때면서) 교실에 난방은 안 해주고, 친한 친구도 없고, 분위기도 삭막하고, 학교 측 통보 실수로 저녁 도시락을 안 싸가도 야자는 시키는 미칠 듯이 답답한 억압된 규율...

내성적이던 난 2~3주가 지나도 적응이 안돼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단 생각에 토요일 방과 후 집에 오자마자 '기적의 최면 학습법'을 꺼내 다시 정독했다. 그리고 자기 최면을 걸기로 했다.

암시의 내용은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지낸다' 뭐 이런 비슷한 거였다.

이번엔 보다 철저히 하기로 했다. 속으로 '하나, 둘, 셋... ' 숫자를 세고 암시를 되뇌는 대신 카세트테이프(그 시절에는 MP3나 스마트폰이 없었음)에 미리 녹음을 했다.

스피커에서 내 목소리가 명령하는 그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따라갔다.

TV에서 나오는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건넌방에 켜져 있는 TV 뉴스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도 했다.

 

입학초 3월의 이주일 중 토요일과 일요일, 이렇게 총 4번의 자기 최면을 한 걸로 기억하는데,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다.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확 바뀐 건 아니지만 우울함과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

환경이 바뀌고 해서 낯선 친구들과는 대화를 잘 하지 못하곤 했지만, 자기최면을 한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같은 반 학우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부터 학교생활이 나름 할 만 해졌다. 수업시간에 고개 푹 숙이고만 있던 내가 처음 보는 애들과 떠들다 걸려 선생님께 혼나는 일도 생겼다.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나처럼 숫기 없는 사람에겐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학기가 끝나가는 7월이 되었을 때는 주위 애들과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귀찮아지기까지 했다.

만족스러운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자기 최면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레 관심이 없어졌고 또 그렇게 잊혀갔다.

만약 국영수에 자기 최면을 했으면 어땠을까? 남들처럼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하지 않아도 성적이 올랐을까?  아니면 게으른 습관이 없어지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변해갔을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작은 성공 2

 

20대 시절, 취업을 못하고 있을 때다. 취업 자체보다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나중엔 두통에 시달리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곤 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처럼 자기 최면을 해봤다. 암시의 말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였던 걸로 기억한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정말 마음이 편안해졌다. 밥을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았고 온종일을 초조함속에서 보내는 일도 없어졌다.하지만 원하던 곳에 취업을 하지는 못했다. 뭐 실력이 한참 모자랐던 거지.

 

그런데 말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의식이라 하지 않았던가.만약 그때 '원하는 회사에 취업한다'라는 암시를 줬으면 어땠을까? 아니 그냥 '수백수천억 원대의 부자가 된다'로 했으면 어땠을까?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해서 그런 암시로 자기 최면을 했을 뿐이다. 꼭 취업을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닐 테니...

그래서 그런 암시의 말로 자기 최면을 했을까?

어쨌든 실제로 바라던 대로 되자 최면은 다시 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주관적 마음만 편안해지고 객관적 현실은 그대로인 채로...

 

 

몰랐지만 이 책의 저자는 꽤나 유명했나보다.

방송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나에겐 로또... 로또가 있다'

 

'나는 수백수천억 원대의 부자가 된다'로 자기 최면을 하면 어떨까? 정말 이루어질까?

썩 만족스럽지 못한 객관적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그전에 왜 두 번의 소박한 성공 뒤에 또 다른 목표를 정해 자기 최면을 하질 않았는지, 이제는 솔직히 말할 수 있다.

현실적 노력 없는 최면만으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은연중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를 봐야 했다.

농구를 잘하기 위해선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애들과 어울려 농구를 해야 했다.

싸움을 잘하기 위해선 동네 권투 체육관에 등록해 샌드백이라도 쳐야 했다.

취업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선 미리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앞서 경험한 작은 성공.  저녁 시간에 누워서 자기 최면을 하려고 잡념을 없애려는 작은 노력 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그 또래들과 경쟁하는 현실이었다. 결코 만만하게 볼게 아니었던 거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핵심은 같다.

'큰 성공을 위해선 큰 노력을 해라'

몸과 정신이 고되고 때로는 안락한 휴식의 시간마저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참고 이겨내거나 포기하거나. 그리고 여기엔 다시 두 가지 괴로움이 있다.

성취를 위해 참고 이겨내야 하는 인내의 괴로움, 그리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포기의 괴로움

 

예를 들어 보자.

스포츠카를 타고 싶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일하는 게 힘들구나.

스포츠카를 타고 싶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일하는게 힘들어 포기하련다. 마음은 편하다. 근데 남들이 스포츠카 타고 다니는 걸 보니까 부럽다. 아니 남이 타는 걸 내가 못 타니까 괴롭다.

 

하루하루 격무와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유일한 희망이 로또라고 하지 않나. 당장 어떠한 출구도 보이지 않지만 일주일 후 당첨될지도 모를 로또에 기대를 품고 이 괴로운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나고 싶은 마음. 당첨만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런데 해야 할 일은 단지 오천 원을 투자해 원하는 숫자에 마킹하는 게 전부다.

작은 노력으로 큰 것을 얻으려 했다. 나의 로또는 자기 최면이었다.

 

대체 믿음이란 뭘까?

 

역시 현실은 냉혹한 것이고 바뀔 수 없는 건가?

결국 로또만이 희망인가?

자기 최면은 말만 그럴듯한 허풍선이 같은 건가?

 

분명 자기 최면으로 잠재의식에 믿음을 불어넣으면 기적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성공담도 있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다. 흔히 바라는 큰 성취는 아니다. 자기 최면으로 잠재의식에 믿음을 심는 게 미약해서 그럴까? 더 강력한 믿음이 필요할까?

 

근육을 키우기 위해 더 무겁게 더 많은 횟수로 들어 올리려 하듯이 최면도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될까?

'나는 부자가 된다'라는 자기 암시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면서...

하지만 아무리 이런 식으로 한다 해도 믿음이 생겨날 것 같지가 않다.

그냥 믿음이 아닌 무의식(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그런 믿음을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대체 그런 믿음이란 정확히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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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