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모스 1,2,3 (국내편)>

vainmus 2020. 1.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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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엄마 아는 사람 딸이 대학생이어서 나는 별 내키지 않았지만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과외라 하면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는 건데 어째 내가 30분 넘게 걸어서 그 여대생 선생님 집에 가게 되었다. 수학 문제를 열심히 설명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굉장히 어른처럼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현재의 나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20대 초반 아닌가. 

 

아무튼 2시간 수업중 쉬는 시간에 자연스레 선생님 방에 있는 책장에 눈이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책 제목은 바로 <모스>였다. 

 

호기심에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나는 바로 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으슥한 별장에서 사탄을 숭배하는 몇몇 사람들이 한 소녀를 테이블에 묶어놓는다.

거칠게 소녀의 옷을 찢어 발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소녀의 젖가슴과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가운데...

소녀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과 처절한 비명,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와 광기에 사로잡힌 악당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바로 과외 수업을 마치고 나는 당당히 3권으로 된 이 장편소설을 빌려가고 싶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허락해 주셨다. 

 

그 어린 시절, 중학교 국어 교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떠올라 집 근처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검색해봤다.

혹시 <모스>가 있을까 해서.

 

 

놀랍게도 있었다.

90년대 중반에 나온 책이기에 없는 거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니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빌려 역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어른이 되어서, 또 세월이 지나서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재미있었다.

또 중학생 시절의 추억과 90년대 사회 분위기의 기억도 새록새록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기억 저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던 추억의 조각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갔다.

나이를 먹어 잊혀졌던, 그 시절에 보고 듣고 겪었던 예전 90년대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일부러 찾아서 보는 90년대 방송, 유튜브 같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과의 만남이었다.

 

 

겉표지의 디자인부터가 뭔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고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악마주의를 확산하는 모스 조직의 음모!

 

끝내 모스의 공포가 한국에까지 뻗치고 말았다...!

 

한국에 까지 뻗친 모스의 공포라...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엄청 무서웠을 것 같다.

 

 

세계를 배후조종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 모스의 한국 지부 내 인물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이에 맞서 송지훈이란 UDT 출신 스포츠 신문사 젊은 기자가 모든 비밀을 파헤치며 악인들과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모스>는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가상의 대기업이다. 아마도 '프리메이슨'류의 음모론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염력을 이용 상대방의 정신을 지배하고 물체를 조작하는 등 지금은 허무맹랑하고 식상하게 들리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이야기 속으로> 같은 '서프라이즈'류의 불가사의, 괴기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되던 당시의 분위기도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또 세계를 악의 이름으로 정복한다는 큰 줄거리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부쩍 수면 위로 떠오른, 밀레니엄의 새로운 천년 이전 1999년 지구가 멸망한다는 세기말의 종말론 또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 짐작해 본다. 

 

 

 

 

어리거나 젊은 여자들만 테이블에 묶어 옷을 벗기고 칼로 찔러 죽이므로써 힘을 얻는다는 사탄 숭배자 <모스>의 조직원들의 행동을 나는 소설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지켜봤다.

이것은 에로티시즘을 가장한 마조히즘적 관음인가?

 

결국 정신적 염력만 믿고 날뛰던 그들은 특수부대 UDT 출신 주인공에게 모조리 죽어 나자빠지고, 조직 자체는 와해되어 버린다. 

 

소설 중간중간에 지루함이나 늘어짐이 전혀 없다.

김진명의 소설처럼 줄거리는 단순하고 인물은 평면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다 때려밖아 버리는, 그런 소설과는 다르다.

다양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만 중간에 붕 떠버리 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일단 재미가 있다. 

작품성, 문학성 등 어쩌고 어쩌고 하지만 대체 재미가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단순히 재미 그 자체를 떠나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게 더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말을 잘 알아듣고 뭘 읽으면 척 하니 이해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장땡이라고 하지 않나. 한 권당 300 페이지가 넘는 3권짜리 책이다.

교과서도 안 보던 중학생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읽었던 소설이다.

흥미는 기본이요 문체 또한 평이하다.

이 정도면 독해력 기르고 책 읽은 습관 들이는 데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과외 선생님을 만난지 약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렇게 마지막 과외 수업 날이 다가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따라오는 법.

어린 여대생 선생님은 더 어린 고등학생인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무슨 문학상을 받은, 평론가가 극찬한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다.

하지만 난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선생님의 책장에서 수많은 책을 들춰봤지만 결국 끝까지 읽고 확실히 기억하는 건 <모스> 하나 뿐이다. 

 

"건강하고 공부 잘 해."

마지막 집을 나서는 길에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난 건강도 공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거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고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있었다.

이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말투까지도. 

"앞으로 이딴 그지 같은 책(모스) 읽지 말고...! 

 

 

마지막으로 소설책 <모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리자면 이렇다.

 

킬링타임용으로 흥행에 성공한,  90년대 감성 물씬 풍기는, 짜임새가 돋보이는, 재미 넘치는 B급 영화와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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