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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전세 1500만원!

vainmus 2019. 8.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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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회색도시 마계 인천이라 불리는 곳을 아름답고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성비!

그렇다. 가성비. 집에도 가성비가 있다. 아무리 후진 동네라 인상을 쓰게 되어도 가성비가 좋다면 더없이 예뻐 보인다. 

가성비는 마법의 단어인 것이다. 

 

"방 3개, 전세 1500만 원!"

내가 약 2년 정도 살았던 빌라의 전셋값이다.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매매가는 대략 3500~400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이 빌라가 있던 동네는 산동네다. 그만큼 이동과 교통이 불편하다는 뜻이다. 서울 같이 먼 거리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은 일단 이런 집을 거른다. 

높은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향해야 하니 젊은 여자나 신혼부부 같은 사람들도 선호하지 않는다. 임신하거나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오르막을 오르려면 힘이 든다.

같은 인천에서도 유독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빌라 밀집 지역.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전봇대와 전선이 어지럽게 엉켜있어 미관상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집돌이인 나에게 교통의 불편함과 각종 편의, 문화 시설과의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 자체도 아주 쾌적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 단점을 마음속으로부터 진정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가성비가 아닌가?

돈 1500만 원에 방 3개짜리 집을 나 홀로 독차지하며 좋아라 했다. 이 방, 저 방에서 큰 대자로 누워도 보고 했다. 

방에 누워 뒹굴거리며 자유와 신나는 고독을 만끽했다. 

남들 보다 싼 값에 물건을 얻었다면 괜히 더 흥이 나는 법.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촌이었지만 집 밖을 나가면 이렇게 조그마한 공원이 있어 좋았다. 

원래는 개인이 인천 남동구로부터 사들여 유료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던 부지다. 

같은 빌라에 사시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빌라 주변 미관을 위해 합법적 절차를 동원해 훼방을 놓으셨다고 했다. 

내가 이 빌라로 이사 온 첫날에 빌라 옥상에서 시원하게 트인 공원을 내려다보며 말씀해주셨다. 

 

 

 

공원 계단을 올라가 보면 이렇게 애매한 작은 공간이 나온다. 사람들도 많이 찾지 않는다. 

홀로 벤치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다. 

독한 산모기만 없다면...

 

 

어지럽던 산동네 일부를 재개발하고 올린 LH의 휴먼시아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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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몸 뉘일 곳 없는 이 서러움! 

어느 소설인지, 아니면 트로트 가사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기억이 있다. 마음 편히 누울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그것이 돈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더욱더.

 

비록 싸구려 빌라이지만 진정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엔 별로였지만 1500만원이라는 가격이 허름한 빌라를 내 마음 속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아주 저렴한 값으로 구할 수 있도록 해 준 인천 산동네가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5월의 화창한 날씨, 극강의 가성비가 더해져 내 마음도 같이 환하게 빛났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동네 특유의 우중충함 따위는 없었다.

화려하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꺼리는 못 되지만 내 한 몸을 편안히 품어주는 집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까?

소시민인 내가 그런 집을 비용 부담 없이, 큰 걱정 없이 구할 수 있는 사실에서 생겨난 감사의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내가 살았던 동네 일부 모습. 

오르막이 힘들어서 그렇지 산 바로 아래에 있어 공기는 정말 좋았다. 

물론 그만큼 벌레도 많지만. 

집에 해놓은 끈끈이에 지네 같은 것이 들러붙어 있는 걸 봤을 땐 정말 충격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오르막이 좀 더 가파르다. 

그래도 난 운동 삼아 이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올랐다. 

여름날 땀 흘리고 숨 가쁘게 걷는 오르막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산꼭대기에서 불어 내리는 산바람이 정말 신선하기 때문이다. 

 

꼭 이런 의자나 평상이 빌라 주변에 나와 있다.

여름에 할머니들이 나와 앉아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장소이기에.

참 정겨운 모습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인사를 마치고 재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할머니들 오지랖의 조준 타겟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난 알 수 있다. 

이 빌라 1층 같은 지층에 사는 사람은 폐지를 모아서 돈을 번다는 것을. 

용돈인지 생계인지 불분명하지만. 

남의 집 창가에 이렇게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지는 않는다.

이건 분명 집에 사는 사람이 모아둔 것이다. 

한꺼번에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다 주려는 것이다. 

 

 

 

 

 

몇 년 만에 가 본 내가 살던 동네는 살짝 변해있었다. 

깔끔함을 내세우는 주거형 오피스텔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듣기로는 인천 간석오거리 부근의 토지가 용도변경이 되어 개발제한이 해제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구멍가게는 편의점으로 바뀌고 없었다. 

아닌가?

그냥 주인만 그대로고 가게만 편의점으로 바뀐 건가?

인천 신명여고 부근 햇빛 잘 드는 넓은 테라스를 갖춘 2층 전셋집.

3500만 원! 

넓은 테라스를 가진 단독 주택 2층 전체를 3500만원에...!

주인 할아버지가 부동산을 통해 제시한 금액이다.

계약만 하고 살지는 않았다.

한국 거주 베트남 가족에게 넘겼다.

 

오피스텔 건축업자에게 절대 팔지 않겠다던 주인 할아버지는 끝까지 주택을 가지고 계셨다. 

50대인 할아버지의 아들은 주택을 팔자고 했다.

몇 년 후 다시 가봤는데 주택은 이미 헐려있었고 높은 건물을 올리기 위한 기초 공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건가 보다. 

 

 

예전에 내가 만약 돈이 아주 많았다면 어땠을까? 절대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건이 되고 더 좋은 곳에 살 수 있더라도 인천 산동네를 나름 좋아할 것 같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 일정 정도의 나이가 된 사람은 거기서 절대 성향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그 변화의 지점을 이미 지나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 그 순간에 B급 마이너스러운 인천의 산동네가 마음속에 굳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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