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낯설음, 설레임, 그리고 현실

vainmus 2019. 8.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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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주 여행, 이중섭 거리. 

 

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문화 거리. 난 이중섭을 모른다. 미술에도 일자무식이다. 그런 내가 이중섭 거리를 이렇게 기억하는 것은 그냥 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참 색다르다고 느꼈다. 완만한 기울기의 언덕,  차가 다니지 않는 길게 늘어선 거리 양 옆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동네에서, 그리고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상점과는 달랐다. 동네 구멍가게나 편의점, 파리 바게트, 시내의 스타벅스 같이 획일화된 것들이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한 개인이 운영하는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카페 같은 거라고 표현하면 되려나? 

 

이미지 출처 : Pixabay

실제 이중섭 거리와는 차이가 있지만 내가 당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미지를 구했다. 

전체적으로 이런 빛깔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무튼 카페, 인형집, 애완동물 샵, 음식점 등등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업종이었지만 상점의 외양과 간판, 그리고 조명이 지금까지 내가 보던 것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구석구석 깔끔하고 밝게 비춰주는, 그러나 차가운 형광들 불빛 투성이의 편의점과는 다른 느낌.

분홍에 약간의 보라색이 섞여 주위에 흩어지는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밝히며 늘어서 있었다. 

집안 거실의 형광등과 은은한 촛불의 일렁거림의 분위기 차이 같은 거다.

어두운 밤에 모르는 여행객들과 뒤섞여 그렇게 거리의 정취를 눈으로 삼키며 오르내리길 몇 번 반복했다. 

난 분명 이 거리, 이중섭 거리를 마음에 들어하는 거였다. 

 

내가 왜 그 거리를 그렇게 좋아했었나, 라는 의문을 가지고 종종 생각했다. 그러다 나중에 깨달았다. 

난 특별히 이중섭 거리를 좋아하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사는 평범한 주택가 동네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현실의 고민과 불만족을 잊었던 것, 현실을 벗어난 낯설음이 바로 묘한 설렘의 이유였던 것이다. 

 

남들은 주로 외국에 나가 대한민국과는 다른 그 나라의 정취를 경험해보곤 하는데 집구석에서 당췌 나가질 않는 나는 겨우 제주도에 가 보고 그런 감상에 젖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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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동창회를 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지금 잘 나가서 현재 얘기를 하는 사람, 그리고 과거에 잘 나가서 지나간 옛 이야기만 하는 사람. 

현재가 마땅치 않다면 진탕 술을 마시며 옛 친구와 옛날 일들을 떠벌릴 것이다.

옛 시절, 즐거웠던 옛 시절, 현재를 잊게 해 줄 수 있는 즐거웠던 옛 시절을. 

 

맨날 술 먹고 주정 부리고 '내가 말이야 왕년에 말이야~!' 라는 말만 지껄이는 술고래 진상, 그리고 여행지의 한 문화 거리로 조성된 골목을 혼자 조용히 걷는 나 같은 사람. 이 둘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겠지만 그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닐까?

현실 불만족자!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과 계획들을 자주 만들곤 한다. 어느 것 하나 실행에 옮겨 깔끔하게 완수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어쩌다가 제대로 일을 마무리한 적이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만족감이 솟아올랐다. 행복이었다.

 

 

 

나는 인천에 산다.

대한민국 중심 서울에서 비껴 난, 마계로 불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핸디캡이 되고 마이너스가 되는 그곳, 인천. 

 

주위에 간석오거리가 있다.  오거리는 사거리와는 달리 네모 반듯하게 구획이 나누어지질 않아 건물을 짓는데 깔끔한 모양새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동네의 단정함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복잡하다. 거기다 각종 유흥가까지 다닥다닥 있으니 결코 쾌적한 동네라고 하기는 뭐하다.

예민한 사람은 마음마저 동네의 모습과 동화되곤 한다.

 

나만의 일을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천 간석동의 어두운 밤, 특히 여자들이 무서워하는 음침한 거리를 걸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었다. 좁고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어두운 그 골목길 풍경이 굉장히 예뻐 보였다. 마침 골목에 아무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보잘것없는, 아니 오히려 인적이 없어 무서울 수도 있는 어두운 골목길. 

이게 왜 그렇게 예쁘고 또 분위기 있어 보였단 말인가?

누군가에게는 마음편히 다니기 무서워 이사가고 싶은 곳이 나에겐 이날 만큼은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돈이 많고 사회적 시선으로 봤을 때 성공해야지만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욕심하고 바랐던 만큼 돈이 없고 성공한 삶이 아니라서 이렇게 불만족스러운 거야,라고 여겼지만 아니란 것을 알았다.

돈이 최고지만 채워주지 못하는 작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혼자 생각했던 일을 해 냈을 때 밀려오던 그 만족감과 행복감 때문에 모든 것이 밝게 보였나 보다. 

어둡고 음침한 골목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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