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운동

나의 변비 투병기 2

vainmus 2019. 4.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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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비 투병기 2

 

나의 변비 투병기 1

 

똥을 싸고 싶었다. 

정말이지 시원하게 똥을 싸고 싶었다.

......

 

몇 달의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변비 걸린 초등학생에서 변비 걸린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때 정말 똥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언젠가 영어 선생님이 수업 중 잡답을 하셨다. 

"아침에 똥을 싸고 밥을 먹어야지 안 싸고 밥 먹으면 어떻게 되겠나?"

 

도대체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만큼은 기억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바로 내 얘기니까.

 

 

아침에 똥!

이거야 말로 반드시 내가 성취해야 할 지상과제가 아닌가.

 

그러던 어느날 밤에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똥이 마렵다. 드디어.

순간 난 고민했다. 

 

'밤이 늦은 시간이므로 조금만 참자, 몇 시간 참고 아침에 즐겁게 똥을 싸자.'

'이런 식으로 아침에 똥 싸는 습관이 되면 난 매일 아침마다 행복할 거야.'

'아니야 그냥 지금 싸자.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난 일단 참기로 했다. 보다 빛나고 상쾌한 아침을 맛보고 싶어서.

현재의 짧은 쾌감보다 앞날의 충만한 행복을 택하기로 한 거다. 

하지만...

기대했던 나의 아침은 화창하지 못했다. 온통 잿빛 하늘이었다. 

똥이 안 마려웠다. 

뭔가 기회를 놓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난 다시 기나긴 변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용케도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보고 나름 변비를 고칠 궁리를 했다. 

한번 소개해 본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있을 나이인 중학생 시절, 하지만 나의 정신은 오로지 변비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변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 삼위일체 장수법.

 

 

 1  현미 - 식물성 섬유

 

현미. 도정한 백미에는 없는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함유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풍부한 식물성 섬유가 있어 변비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었다. 

한마디로 똥의 재료가 된다는 거였다. 

그래. 현미를 먹자.

근데 문제가 생겼다. 

당시 우리 집 어른들은 현미를 매우 싫어했다는 사실. 

까끌까끌한 게 영 먹기 불편하고 식감도 나쁘다는 게 그 이유.

나는 뭔가 억울함을 느꼈다. 건강에 좋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변비에 좋은, 현미를 단지 백미보다 조금 떨어지는 식감 하나 때문에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아들내미가 현미 좀 먹어서 변비를 고쳐보겠다는데...

(지금이면 전기밥솥에 쌀 씻어서 넣고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알아서 되지만 그때는 가스레인지에 압력밥솥으로 밥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선 위험하고 밥을 태운다고 내가 밥을 못하게 했다.)

기성세대의 공고한 질서에 부조리를 느끼면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이런 것일까?

결국 난 기존 질서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실패!

 

 2  미역 - 식물성 섬유

 

두 번째는 미역이었다. 

식물성 섬유로 본다면 미역이 현미보다 한수 위였고, 또 우리 집에서도 미역국을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잘됐다 싶었다. 

언젠가 엄마가 한 냄비 가득 끓여놓은 미역국 안에 미역을 나 혼자 밥도 안 먹고 오직 미역만을 퍼먹은 적도 있다. 

다음날 똥을 두 바가지나 났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시원하게 똥을 싸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몇 십분 후 다시 똥이 마려운 그 신비로운 느낌.

똥 색은 어두웠다. 미역 색의 똥이었다.

어쨌든 난 기뻤다. 

하루에 똥을 두 번이나 싸다니. 이거 굉장히 고무적인 일 아닌가.

하지만 매일 미역국을 끓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밥도 못하는 내가 미역국을 해 먹는다는 건 더더욱 말일 안 되는 얘기고.

실패!

 

 

 3  우유 - 설사 유발

 

내 생각은 우유를 먹어서 설사를 해보자는 데 까지 이르렀다. 

밤에 우유 잔뜩 마시고 아침에 설사를 하는 거야. 

어차피 똥 싸는 건 매한가지니까.

효과는 있었다. 

똥은 잘 나온다. (뭔가 깔끔하고 부드럽게 싸악~ 이렇게 나오는 게 아니라 굉장히 지저분하게 분사된다)

그런데 종일 배가 아팠다. 

이건 똥을 싸고 못 싸고가 아니라 배가 아픈 걸 참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거기다 우유를 계속 먹으면 적응이 되어서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게 되니 지속 가능한 변비에 대한 해결책도 아니었다. 

실패!

 

 4   단식 - 숙변 제거 

 

단식에 관한 책을 봤다. 

인위적으로 식사를 제한함으로써 체내의 독소, 노폐물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리고 그 체내 노폐물에는 장속에 쌓여있다는 숙변, 그리니까 내 뱃속에서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오래 묵은 똥덩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큰 기대를 하고 실천해보려 했다. 물론 제대로 된 이해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물론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책은 좀 사기성이 짙었다. 

그냥 굶기만 하면 내 뱃속에 있는 똥이 나올 것으로 여기고 무조건 5일을 굶었다. 

체중이 5킬로나 줄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똥은 안 나왔다. 

나는 책에 나온 대로 7일을 생각했는데 5일 만에 강제적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지러워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집 현관문 앞 쓰레기 통에...

진짜 욕을 개 처먹은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밥숟가락을 들었다. 

이것도 실패!

 

 

하나 같이 다 실패했다. 

그랬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변비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참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내 중학교 시절 어느 날 하루를 묘사해본다. 

 

오늘은 날아갈 듯하다. 며칠 동안 묶은 똥을 쌌기 때문에 시원하다. 목욕탕에 가서 상쾌하게 목욕을 하고 지저분한 머리도 깎고 듣고 싶은 팝송 테이프(그때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도 MP3도 없었다)도 구해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뭔가 개운하질 않다.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진다. 

기분 좋은 오늘은 금방 지나가고 내일이 온다. 

내일 아침 난 똥을 쌀 수 있을까?

그렇게 난 또 뱃속에 똥을 담아놓고 며칠을 보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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