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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초보 여행기> 제주 2019.9 (4) 이중섭거리

vainmus 2019. 9.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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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거리

 

중문관광단지에서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거리>에 도착했다. 2시간 반 동안 자전거로.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거리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볼까, 했지만 이미 다리 근육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상태라 몸 전체는 편안함의 여유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중섭거리>는 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조성해 놓은 관광지다. 솔직히 난 이중섭의 작품세계가 어떤지 잘 모른다. 원체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쪽팔리지 않다. 보아하니 다들 그냥 제주도의 이름 있는 관광지 중 하나라 들른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이중섭거리>는 남북으로 좁고 길게 뻗은 경사가 심한 일종의 골목길이다. 3 톤 트럭 정도가 조심하면서 지날 수 있는 너비다. 

 

 

 

<이중섭거리>를 거슬러 오르면 그 끝에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이것도 나름 유명해서인지 <이중섭거리>와 쌍으로 묶여 같은 코스로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나도 한 번 들러볼까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힘들어서 생략해버렸다. 

 

 

여행객들이 찾는 관광지가 다 그렇듯 상가들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똑같이 깔끔해도 별다른 개성이 없는 대도시 번화가의 비싼 상점 하고는 그 느낌이 다르다.

강남과 홍대의 차이라고 해야 하려나?

 

홍대에서 우리가 얻고 싶은 분위기는 강남의 그것과는 다르다. 

돈을 많이 들여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깔끔하지만 몰개성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획일화된, 그다지 멋대가리 없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열정과 개성으로 무언가 독창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홍대도 강남이다. 

 

별 생각 없는 부티남이 아닌 내 마음에 쏙 드는 멋들어짐을 추구하지만 결국엔 다 돈지랄로 귀결될 따름이다. 

진정한 열정과 개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이중섭거리에도 높은 건물들이 올라서고 있었다. 

강남과 홍대처럼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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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 식당 유리에 흑백사진으로 붙어있는 인물이 <이중섭>이다. 

잘 생겼다. 

이중섭거리 중간 쯤에 우체국 서귀포 수련원이 있다. 

저 멀리 앞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사람이 많이 찾는 주말 저녁에는 자리를 펴고 이런저런 상품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내가 찾은 비수기 평일 낮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중섭 공원

 

 

조그마한 공원이 있다. 

진짜 작다. 이게 다다. 

금발의 외국인 여자 관광객 둘이 몇 초 둘러보가 그냥 가버렸다. 

 

 

 

 

 

앉을 수 있는 벤치. 역시 공원에는 벤치가 있어야 제맛!

하지만 철제 의자다.

불편하다. 

 

 

서귀포 극장

 

 

<이중섭거리>에는 <서귀포극장>이 있다. 극장 자체가 유명한 건 아니고 그냥 이중섭거리에 있는 옛 극장이라 사람들이 찾는 것 같다. 오래된 외관과 담쟁이넝쿨이 벽면에 붙어 있는 모습이 내 눈길을 가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 특별함과 나만의 무엇을 찾지 않나?

남들 다 가는 비싸고 화려한 장소보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나만의 휴식처 같은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서귀포극장이 그런 느낌을 조금 주었다. 

 

카페로 비유하자면 이럴 것 같다. 

스타벅스는 CGV나 롯데시네마다. 

인구가 붐비는 도심에서 벗어나 한가한 교외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낯선 분위기의 커피집은 서귀포극장이다. 

 

 

 

조명이 위에서 비추고 있다.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건가?

작품인가?

 

한가로운 곳에 있는 나만의 커피집, 그 집에 들어섰다.

하지만 나는 정작 커피맛을 음미할 줄 모르니 맛이 좋은 건지 아닌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서귀포극장 내부에 이렇게 야외 공연장이 있다. 

시원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 벽면을 에워싼 담쟁이넝쿨이 인상적이다. 

 

 

 

 

원래 이중섭거리는 서울의 바쁨과 북적거림을 떠나 제주의 한가롭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모여 활성화시켜서 이름이 알려진 거 아닐까? 물론 제주도의 관광 정책도 한몫했겠지만.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중심을 벗어나면 인구와 부유함의 밀도가 낮아진다. 밀도가 낮아지는 건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중심에서 멀어진 만큼 초라하고 없어보이고 황량해진다는 거다. 사람들도 무기력해지고. 

 

하지만 중심이 아니라도, 사람과 돈이 없어도 활기참과 멋스러움을 풍길 수 있지 않을까?

이중섭거리가 유명세를 타기 직전 모습처럼 말이다. 

 

이중섭거리에 높은 빌딩이 들어서는 중이다. 밀도가 높아진다. 시간이 지나면 예전부터 있었던, 이중섭거리와 잘 어울렸던 서귀포극장이 변화된 이 거리에는 오히려 어색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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