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싱

복싱 프로테스트(2015, KBF) 후기

vainmus 2026. 5.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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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이 프로테스트에 나가보라고 하셨다.

바로 얼마 전 생활체육 복싱대회 우승을 했고, 또 그 전에 연속 2회의 우승 경험이 있어서다.

상승세를 한 번 타보라는 뜻.

여기서 먼저 그동안 복싱 체육관을 오래 다닌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을 풀어놓으려 한다.

필자 포함 평범한 일반인이 복싱에 입문하고 계속 나아가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1. 살도 빼고 건강도 챙기려 운동을 하려 하지만... 헬스는 너무 정적이고 재미없고 뭐 없나?, 하고 찾아보던 중...
2. 동네마다 있는 복싱 체육관이 눈에 띄어 등록을 한다.
3. 3달 정도가 고비인데 여기서 재미를 못 느끼면 그만두게 된다.
4. 복싱이 몸에 맞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5. 6개월~1년 정도 되면 슬슬 자신감도 생기고 생활체육 복싱대회에 나가게 된다.
6. 다른 체육관에서 그래도 좀 한다하는 사람들과 붙어서 이겨 우승을 하게 되면 그래도 어디가서 '복싱 왜그렇게 못하냐' 소리는 안 듣는다.
7. 만약 지더라도 연습을 계속 하면서 출전을 이어간다면 누구나 우승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좋지만 만약 조금 더 나아가고 싶은 사람은 프로 테스트에 도전한다.
8. 프로 테스트 합격 했다고 하면 보통 사람이 복싱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모두 다 이룬 셈이다.
이때부터 복싱을 졸업하고 다른 운동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평생 운동삼아 계속 하게 된다.
취미가 될 수도, 직업 선수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욕심이 있었기에 관장님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하고 프로 테스트에 나갈 결심을 했다. 바로 맹훈련에 돌입했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하던 거 계속 하는 거다.

쉐도우복싱하고 헤비백 때리고.

이게 다다.

다만 그 시간과 강도를 엄청 올렸다.

링 안에서 쉐도우복싱을 거의 10라운드 정도 했는데 마치고 나면 옷이 다 젖어서 땀이 링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헤비백도 그냥 무식하게 쳐댔다. 손가락, 손목, 어깨 다 아파왔다.

링 제일 왼쪽 구석탱이에 검은색 옷, 검은색 글러브가 필자

늦은 봄부터 시작된 준비는 프로 테스트가 열리는 7월 하순까지 계속되었다. 마음의 부담이 심했다. 생활체육대회도 긴장했는데 이건 프로 테스트 아닌가. 생체도 체육관에서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인데 이건 생체 우승자들 중에서도 제법 한다하는 사람들끼리의 대결이라서.

그래도 재미있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땀흘리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아무리 복싱이 혼자서 하는 외로운 운동이지만 누군가 곁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커다란 위로와 응원이 되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다. 기억을 회상해 이 글을 쓰며 느끼는 바다.

아무튼...

마지막 며칠을 두고 체중감량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나는 라이트헤비급으로 출전했다. 웰터급이나 미들급 정도로 내렸어야 했는데 그건 시간이 촉박하던 나에겐 너무 무리한 감량이었다.

84kg 정도 되는 몸무게를 서서히 줄여가다 바로 전날 토요일은 온 종일 밥을 굶고 쉐도우복싱으로 땀을 빼며 제한 체중인 79kg로 맞췄다.

생체와는 달랐다. 당일 아침 출발 전 관장님이 출전 회원 모두의 체중을 일일히 체크했다. 체중 초과는 개인과 체육관의 개망신이기 때문이다. 테스트가 열리는 서울 양천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전인 모두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해가며 철저히 신원 파악을 하면서 바로 체중을 쟀다.

생체에서는 체중에 여유가 있으면 옷을 입어도 됐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다 벗어야 했다.

사람들이 팬티만 입은 채 저울에 올랐다. 주위 여자들 몇몇이 안 보는 척 하고 다 봤다.

출전자들 옷을 벗고 체중 재는 모습에서 대략적인 성향이 보이는 듯했다. 문신이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 화려하고 요란한 색상의 팬티를 입은 사람, 나처럼 몸도 팬티도 눈에 안 띄고 밋밋한 사람 등등.

http://www.kbfkoreaboxing.com/

한국 권투가 워낙 협회가 난립해 있어 제대로 된 공신력은 많이 떨어진다고 들었다.

내가 나간 곳인 KBF(한국권투연맹)도 그런 몇몇 협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확실히 생체보다는 수준이 훨씬 높았다.

멀리 경상도 지역 체육관에서도 오는 등 출전자 층도 두터웠다.

프로 테스트는 이기고 지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우리 단체의 이름으로 선수 생활을 하며 파이트 머니를 받을 만한 최소한의 자격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자리다. 스타가 되든 말든 그건 테스트 합격 후 그 사람이 해내야 할 일이다.

상대방을 쓰러뜨려도 막 휘두르는 주먹이면 탈락이다. 펀치를 허용하더라도 견고한 가드로 방어를 하는 등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면 합격이다. 한마디로 복싱의 기본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 체급인 라이트헤비급은 나 포함 총 3명이었다. 3명이 서로 번갈아가며 스파링을 했다.

아무리 두서 없고 체계 없이 훈련을 했다고 하나 연습한 양이 워낙 많아서 제법 좋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해 오른쪽으로 상체를 숙이고 갈비뼈와 겨드랑이 사이에 크게 한방을 먹였다. 너무 긴장해서 어깨를 제대로 이완시키지 못하고 순전히 상체 힘 위주로 때렸는데도 커다란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링 아래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우와~'하면서 놀랬다. 나도 놀랬다. 내가 들어도 소리가 너무 컸고, 또 맞은 사람이 끄떡 없어서.

그렇게 스파링을 하던 중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셋 모두 합격이었다.

링 위에서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긴장이 풀렸다. 기분이 좋았다. 이후로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체급 사람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내 프로 테스트 합격증과 사진은 합격한 역대 다른 회원들의 것들과 함께 체육관에 걸려있다.

예전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사진을 가져왔는데 얼굴들은 다 블러처리 했다.

웃긴 건 간석동 체육관에서 운동해서 합격했는데 내 사진은 주안 체육관에 걸려있다는...

절반 정도가 합격한 걸로 기억한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합격자들은 사진을 찍어야 했다. 두 주먹을 올린 권투 자세를 잡고 상반신이 나오는 걸로.

사진 촬영비 10만원에 등록비가 5만원이었나?

협회도 이런 식으로 돈을 벌면서 선수들 발굴하고, 또 출전자들도 나름의 추억과 성취감을 얻고.

윈윈이었다.

난 굳이 돈을 내고 촬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 다 하니까 그냥 따라했다.

 

다 같이 체육관으로 오니 해가 질 무렵이었다. 합격한 우리 체육관 관원들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회식은 하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토요일이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하기에.

모두가 체육관을 떠난 후, 남아있던 나는 관장님께 악수를 청하며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성격상 결코 혼자서는 프로 테스트 나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을 건데, 관장님이 등을 떠밀어주신 게 큰 힘이 되었기에.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었다.

열정과 흥분의 여운이 마음속에 남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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