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싱

첫번째 생활체육 복싱대회(2013, 경기도 화성시) 후기

vainmus 2026. 5.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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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겨울, 체육관으로 공문이 왔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생활체육복싱대회를 연다고.

출전할 선수(일반인)들은 동봉한 신청서 양식에 따라 개인 인적 사항을 기입하여 이메일로 제출하고 참가비 3만원(으로 기억함)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체육관 관장님은 이런 대회에 나가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셨다.

생체는 주말에 열리는데 쉬는 날 늦잠도 못자고 새벽부터 체육관으로 집합해서 이것저것 체크하고 운전해서 다른 지역까지 가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거기다 잘 나가던 선수 시절 경험 때문인지 복싱에 대한 묘한 엘리트 의식이 있어서 일반인들의 대회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으셨다.

 

하지만 요즘 누가 복싱을 예전처럼 돈 벌려고 직업으로 하는가?

다들 취미로 한다. 그러니 생활체육대회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2 아무튼...

관장님이 몇몇 관원들에게 말해 한번 나가보라고 했다. 나한테는 나가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복싱을 못하니까.

 

다른 관원들은 대부분 1년 정도 체육관 다녔다. 생활체육대회 참가하는 사람들의 체육관 경력은 1년 안팍이 많다. 빠르면 6개월만 다니고 나가기도 한다. 내가 본 가장 짧은 경력은 3개월이다. 3개월 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경우도 있다(물론 킥복싱 경험이 조금 있었지만).

 

나는 거의 3년을 다녔다. 3년을 다니고 처음 출전을 한 것이다. 그만큼 운동신경이 없고 몸이 둔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관장님한테 이런 말도 들어야 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어."

"너한테는 복싱이 안 맞는 거 같다."

"다른 운동을 찾아봐."

 

이런 내가 생체에 나간다고 했으니 관장님이 되도록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게 이해될 만도 하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내가 나가겠다고 하는데...

3 난 결국 참가비 3만원을 지불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내 체중은 대략 78kg 정도 되었다. 생활체육대회는 5kg 단위로 체급이 나뉜다.

나는 75kg급에 맞추기로 하고 체중을 줄여야 햇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0.5kg을 남겨놓고 잘 빠지지가 않았는데 미친듯이 헤비백을 치고 밥도 하루종일 굶고 해서 체중을 여유있게 맞춰 놨다.

 

생활체육 포함 모든 복싱에서는 체중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 그만큼 가벼운 상대와 만난다는 거고 이건 나를 가격하는 상대방 펀치력의 세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중 줄이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해서 지방을 태워야 한다. 이것만 해도 벌써 만만치 않은데 밥도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만해서 군살만 걷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가장 확실한 음식을 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지만 힘이 없어지는 부작용을 감수한채로.

 

이왕 나갈 꺼 반드시 우승을 해야 겠다는 각오로 나름 열심히 운동을 했다.

대회 나가기 2-3일 전에 정말로 열정적으로 헤비백을 쳤다. 하루에 1kg이나 빠졌을 정도로.

관장님께서 알려주신 훈련도 했다.

복싱을 하는 누구나 아는 운동법이지만 힘들어서 아무도 하지 않는 다는 그 훈련.

덤벨 펀치!

덤벨 펀치
1kg 핑크색 아령을 양손에 쥐고 왼쪽 오른쪽 주먹을 번갈아 내지르면서 다리로는 제자리를 힘차게 달리는 훈련법.
3분 하고 1분 쉬고 다시 3분 하는 식으로 반복.
 
다리의 스텝, 주먹을 내지르는 팔 힘, 몸통을 비트는 복근의 힘, 내지른 주먹을 회수할 때 필요한 등 근육,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실전에서 글러브의 무게를 이겨내면서 주먹을 뻗을 수 있는 앞 어깨의 힘, 이 모두를 기를 수 있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3분 대신 2분을 하는 걸로 했다.

비록 2분 이지만 우리 체육관에서 이걸 해내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

진짜 남들 몇 달 연습하고 나가는 대회에서 3년 경력의 관원인 내가 패배하면 개망신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4 시합날은 일요일이었다. 토요일에 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고픔을 참았다. 체중조절을 위해. 그리고 긴장감에 한숨도 자지를 못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요일 새벽 6시에 다들 체육관에 모였다. 인천에서 화성까지는 차로 시간이 꽤 걸린다.

실제 시합은 거의 10시나 11시 이후에 시작하지만 그 전에 체중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체중 확인은 8시 반이나 9시쯤 하거나 끝내야 한다.

 

얻어타고 가는 다른 관원의 차 안에서 '나가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

 

'괜히 출전한다고 했나?'

'링에서 얻어 터지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들만 계속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보다 열심히 한 사람 없을 거라는 일말의 자신감도 있었다.

 

'동네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출전하는 조그마한 생체 대회가 이 정도인데 올림픽 같은 경우는 얼마나 긴장될까?'

 

인천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생활체육 복싱대회 출전자인 나를 올림픽 출전 선수와 비교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 봐도 웃기다.

5 도착하자마자 바로 신분 확인을 했다.

신분 확인은 신분증 없이 그냥 한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대리 출전을 해도 모를 것이다. 대학 입시도 아니고 자격증 시험도 아니고 누가 이런 생체 복싱을 대리 출전 한단 말인가? 신분증 없이 할 만 하다.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측정했다.

체중을 맞추지 못한 몇몇 출전자들은 칸막이도 없이 개방된 장소의 저울 위에서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었다.

난 옷을 입은 채로 체중을 쟀다.

여유있게 통과했다. 78kg에서 단시간 내에 74kg 정도까지 줄여놨기에.

물론 그만큼 힘도 같이 빠졌지만.

쓸데없는 일들이 오갔다. 어떤 일을 하는 지 당최 알 수 없는 지역 체육운영위원회(?) 간부의 일장훈시와 여지껏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무슨 걸그룹이 초대되어 링 위에서 공연을 했다. 그 누구도 신기하리만치 관심이 없었다.

이후로는 그냥 기다림의 시간만이 남았다.

2분 2라운드로 진행되는 생체는 빨리 끝난다. 하지만 링 하나에서 그 많은 출전자들이 시합을 해야 하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복싱대회의 어수선함, 그것은 마치 앞으로 폭망할 것이 분명한 싸구려 3류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 그 자체였다.

 

6 대회에서 나는 우리 체육관 관장님의 실력이 좋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복싱을 잘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건 쉽다고 들었다.

그 사람의 얼굴, 특히 그 중에 코를 보면 된다고 한다.

코가 오똑하고 매끈하고 높으면 복싱을 잘 한 거다.

그만큼 맞질 않고 스마트한 복싱을 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코가 낮고 뭉개지고 어딘지 모르게 휘어있다면 선수 시절 엄청 많이 맞았다는 거다.

(이런 관장님들은 맷집과 투지를 강조한다고...)

대회에서 다른 체육관 관장들의 얼굴을 보는데 정말 코가 살짝 찌그러진 듯한 모습이 많이 눈에 띄였다.

우리 체육관 관장님이, 그의 깔끔한 얼굴과 오똑한 콧대와 뾰족한 콧날이, 멋있고 대단하게 보였다.

관원들끼리 얘기했다.

 

"우리 관장 엄청 잘하는 거여~"

"야~ 다른 관장들 얼굴 한번 봐라~!"

7 우리는 모두 다 초보자였다.

선수로 나선 우리들은 체중을 줄일 줄 몰라 무조건 굶었고 그래서 근육에 힘이 없었다.

체중을 잰 다음 시합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서 뭘 좀 먹기로 했다.

얼큰한 국물 같은 걸 먹었는데 쫄쫄 굶은 속에 매운 국물이 들어갔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한참 남아있는 우리들의 시합 시간.

기다리면서 뭘 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시간만 죽였다.

그래도 선수들은 그나마 괜찮았다.

선수들을 응원한다고 따라온 친구들, 가족들은 무슨 죄인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않거나 그냥 서서 무료하기만 한 시간을 견뎌냈다.

관장님은 선수들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대회장에서 만난 다른 체육관 복싱 관장님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잡답이나 했다.

모든 것이 다 엉성했다.

 

그래도 다른 지역, 다른 체육관 선수들이 링에 올라가 시합하는 걸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확실히 스파링과 실제 시합은 달랐다.

아무리 실전처럼 한다고 해도 이미 얼굴을 알고 친분이 있는 체육관 사람을 상대로는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게 맞다. 스파링은 기술을 익히는 것이지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니까.

 

실제 시합은 살벌했다.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그래도 일반인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개싸움이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복싱에 최적화된 주먹의 궤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붕붕 막주먹만 남발했다.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엄청난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 기량이 엉성했다.

 

생체에 나오는 사람들 실력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10명중 8명 정도가 비슷하다.

순전히 어깨에 힘이 좋아 주먹이 끊임없이 나가고 숨이 덜 차는 사람이 이긴다.

1명은 정말 못한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뭘 믿고 여기 왜 나왔나 싶다. 일방적으로 쳐 맞는 게 불쌍할 정도.

나머지 1명은 잘하는 사람이다.

복싱 프로를 준비하는 사람, 혹은 종합격투기 연습생이 복싱 경험을 쌓기 위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양민학살이 연출된다.

 

8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어찌어찌 링에 올라 거리를 재며 주먹을 뻗는데 하나도 맞지 않았다. 거리감은 없고 두려움만 있고...멀리서 주먹질만 한거다.

심판이 제발 붙어서 싸우라고 주의를 줬고 보는 사람들이 웃었다. 개초보 둘이서 링 위에 올라 파이팅 넘치는복싱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코메디를 한 셈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나보다 키가 작은 상대였다. 복싱에서 키는 중요하다. 키가 크다는 건 팔도 길다는 거고 그만큼 멀리서 상대를 때릴 수 있다는 거니까.

난 내 팔 길이(복싱에서는 리치라고 한다)를 이용해 상대방 안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꽃아 넣었다.

그런데 몇 대 때리고나니 내가 먼저 힘들어졌다. 어깨가 무거워 펀치가 나오질 않고 숨도 차고 해서 그냥 아웃 복싱 하는 척 하고 링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다시 힘이 들어오면 접근해서 때리고...

거기 참가하는 일반인 선수들, 관람객들 모두 복싱을 잘 몰랐다.

모르면 보이질 않는다.

난 때리는 게 힘들어서 아무 의미없이 링을 어설픈 스텝으로 한바퀴 빙 도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와~~ 아웃복서다!"

좋게 보면 지능적으로 영리하게 한 거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런 얍삽이가 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이기기만 하면 장땡이지.

대진 운이 좋아서 그렇게 한 경기만 이기고 난 우승을 했다.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사할 때 버리고 오려했던 트로피.

엄마가 가져가라고 해서 아직 남아있다.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할 사진 찍을 줄 알았다면 상장도 다 모아두는 건데...

 

우리 체육관 출전자들 5명 중 1명을 빼고 다 우승을 했다.

우승이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다.

대진표 상으로 2명만 이기면 우승이다.

참고로 1명만 이기면 준우승.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여성부, 20대부, 30대부, 40대부 이렇게 나눠져 있는 상태에서 또 다시 50kg급, 55kg급, 60kg급, 65kg급 - - - - 90kg급, 95kg급, 100kg급.

이런 식으로 되어 있으니 우승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중에 시함 끝나고 우승자들이 링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데 진짜 개나소나 다 우승자였다. 우승자 중 대표로 한 사람이 상장을 받았다. 분명 화성시 생활체육 복싱대회를 주관한 체육관 관장님의 지인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9 5명 출전에 4명이 우승했으니 관장님은 나름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복싱 체육관에서 생체 우승자가 많이 나오게 되면 관장님이 만족스러워 하며 즐겁게 회식을 한다.

아니면 그냥 뿔뿔히 흩어지고.

화성에서 인천까지 머나먼 길을 돌아와 체육관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우승하지 못한 1명은 선약이 있다며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극심한 피로감에 씻고 바로 골아 떨어졌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다들 피곤해 했다.

회식 후 헤어질 때 관장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랬다.

"힘들다. 다음엔 나가지 말자"

 

다음 날인 월요일 체육관에서는 나를 포함한 우승자들이 상당한 화제였다.

관원들이 특히 내가 우승했다고 대단하게 여기는 듯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관장님이 내가 제일 잘했다고 이야기 하셨다고...

그동안 연습한게 실전에서 나왔나보다.

어쨌든 이 생체 대회를 계기로 내 복싱 실력은 한 단계 발전하게 되었다.

뭐 그래봐야 동네 아저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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